글라프레스는 책을 어떤 공간으로 대하여,
그 안과 밖을 탐색한다.

Glas takes a book as a space, which allows one to explore its inside and outside.



.스스로를 가르친 경위: 아티스트북을 중심으로.
2024.11.26. 더북소사이어티
글라프레스 신승민 진행

더북소사이어티 임경용 대표님의 제안으로 북살롱 토크를 진행했다. 아래는 그날 이야기했던 내용을 복기하여 다시 정리한 글이다.

아티스트북과 아트북의 차이: 전시 도록과 같은 아트북은 어떤 실제 작품을 부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반면, 아티스트북은 그 자체가 목적인 작업물이다. 그리고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이를테면 Ed Ruscha의 주유소 사진을 모은 책자는 표면적으로 도록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이 책자가 기술 자료처럼 보이길 원했고 텍스트를 거의 배제하여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산업 구조가 정보를 생성, 분배하는 표준화된 경로에 잠입해서 조용한 분열을 일으키려는 듯이 말이다.

아티스트북은 결국 아티스트의 책이다. 즉, 아티스트북의 생산 주체는 보이지 않는 의미와 내용의 전달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질적, 비물질적 공정에 관여하며 작업하는 예술가다. 아티스트북을 분류적으로 정의하기보다 그것이 활용된 개념미술의 서사와 맥락을 살펴 보아야 한다. 이안 번: 개념미술은 물질 오브제를 예술 자체에 대한 메타적 논증으로 대체한다. 논증은 주장과 근거로 이루어진 언어적 표현이다. 따라서 개념미술은 언어와 논리에 의존하며, 이를 작업화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으로 책이라는 매체가 조명받기 시작했다.

글라프레스가 개념미술, 그리고 그 아티스트북을 참고한 이유는 책과 책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존 범주를 확장시켜주기 때문이다. 책을 제작함에 있어 더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고 꼭 까다로운 기술장치를 동원하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책의 보잘것없음을 사랑하기 때문에 대충 만든 듯한 인상을 주어도 괜찮고, 개념미술의 아티스트북이 예술의 시장화에 반하는 일종의 ‘저급화 전략’을 따랐기 때문에 우리도 비슷한 태도를 고수하려고 한다.

아티스트북은 그것과 그것 아닌 것을 분류하기 위한 어휘가 아니다. 아티스트북은 관습에 의해 배제되기 쉬운 표현 양상을 포용하고 확장시키기 위해 사용된 어휘다. 특히, 아티스트북은 어떤 시간의 단락, 미술사적 현상을 간접 지시한다. 그 구체적 시간과 실천이 실패로 규정되곤 하지만, 그것은 흥미로운 실패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예술을 물질적 논리로부터 자유롭게 하려고 한 전복적 시도였기 때문이다.

아트앤랭귀지의 주축이었던 이안 번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념미술의 정신을 최대한 멀리 끌고 가려고 했다. 호주 출신으로 런던으로 유학했고 뉴욕으로 넘어간 다음 다시 호주로 돌아와, 노동자 연합 소속으로 다양한 예술, 문화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추진했다. 그는 예술의 ‘주변부 시야(peripheral vision)’를 제안하며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문화가 맞닿는 경계에서 수용적 태도를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문화들이 눈과 눈을 마주하고 다른 목적 없이 바라보는 장면을 은유적으로 제시했다. 시선이 목적의식과 욕망에 좌우될 때 우리는 중앙에만 초점을 두고 가장자리를 배제한다. 이런 욕망을 거두고 나면 조금은 흐릿한 전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전체 안에서 여러 타자의 관점이 교차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떤 명료함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서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우리가 속한 지리적, 문화적 반경 내에서 아티스트북의 정신을 실천한다는 것은 단지 그 꼴과 모형을 반복하는 것과 달라야 한다. 만일 우리 문화에서 아티스트북의 개념이 여전히 생소하다면,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며 구체적 목적에 맞게 다시금 디자인할 수 있다. 이안 번의 중심이 유럽이었다면, 나의 욕망이 집중된 중심은 어디며 그 흐릿한 바깥은 무엇인지 새롭게 따져볼 수 있다.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이 가닿을 수 없는 곳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나는 개념미술로부터 학습한 두 가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개념미술이 예술의 개념마저 비판의 도마에 올렸듯, 우리의 비판적 사유와 실천에서 성역은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 우리가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구체적 장소와 이야기들이 어쩌면 아직 은폐된 채로 우리의 증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